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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믿음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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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은 자

4월 12, 2022 by 한혜신 Leave a Comment

Asaph | 골로새서 1:13~29

성경은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고 가르친다. 출혈이 심하면 사람은 죽게 된다. 한 사람에게 출혈이 일어나서 40%의 피가 몸 밖으로 배출되면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새빨간 피를 보면 신경을 집중한다. 그리고 재빨리 지혈을 한다. 붉은 피의 색상은 경각심을 갖게 한다. 곧 생명에 대하여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릴 때부터 단번에 배운다. 성경에 나오는 특별한 피가 있다. 그것 역시 우리를 그렇게 영적으로 이끈다. 찬송에는 피에 관한 곡이 많다. 사람들의 노래 중에는 군가에서 피가 나온다. 그러나 성경과 성경의 피를 가지고 이렇게 많은 노래와 다양한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나 단체가 없다. 바로 주의 보혈에 대한 찬송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계속 작사들과 작곡자들을 통해 새로운 보혈 찬송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왜 보혈 찬송을 많이 부르는가?

1. 보혈은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내어 자신의 아들의 왕국으로 옮겨주었기 때문이다(v.13).

어둠의 권능 즉 사망을 이기는 힘은 사람에게 있지 않다. 사람의 피에 있지 않다. 몸에 출혈이 심할 때 수혈을 통해 몸을 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 아무리 수혈을 해도 그는 영적으로 살아나지 못한다. 그러나 보혈, 즉 주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는 다르다. 그분의 피는 우리를 그 어둠의 권능, 사망에서 건져내어 생명으로 옮길 수 있다. 그리하여 마귀의 왕국에서 건져 주님의 왕국으로 데려갈 수 있다.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썩을 것들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 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피이기 때문이다. 그 피가 우리를 건져내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이끌어 내셨다고 바울을 통해 선포하셨다. (히 13:20) 이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영존하는 언약의 피를 통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께서 어둠의 권능은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한 죽음의 형벌로 붙잡는 힘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존하는 언약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뒤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 영존하는 어둠의 권능을 깨뜨리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를 영존하는 자신의 왕국으로 우리를 옮겨놓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혈의 찬송을 자주 자주 불러 찬양해야 한다.

2. 보혈은 구속 곧 죄들을 용서하는 긍휼과 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v.14).

긍휼(矜恤)이라는 한자어에서 ‘휼’자 안에 피 ‘혈’자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긴다는 뜻인데 단순히 가난하거나 병고를 치르는 사람이나, 물질적, 육체적으로 큰 재난을 당한 사람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그 피는 육체적 생명 이상의 생명과 관련이 있다! 특히 ‘휼’은 동정하다는 의미인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흘리시기 까지 죄로 멸망할 우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시고 동정하셨음을 뜻한다. 이 보혈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가! (엡 1:7)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그분의 긍휼과 사랑을 안다면, 우리는 자주 자주 보혈을 찬송하고 찬양해야 함이 마땅하다. 긍휼 mercy는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에게 그 벌을 내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 피가 대신 흘려짐으로 우리는 그 영원한 형벌로부터 벗어났다. 주님은 이 긍휼의 보혈을 선물로 주셨다. 그러므로 보혈 찬송이 은혜롭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자신의 죄를 스스로 씻을 수 없다.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일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 형벌은 죽음뿐이다. 육체가 죽고, 영원한 죽음인 두 번째 사망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음을 보고만 있지 않으셨다. 주님은 사람을 지으시는 플랜A가 있으셨다면, 그 사람이 범죄 할 경우에 대한 플랜B도 있으셨다. (벧전 1:20) 참으로 그분께서는 세상의 창건 이전에 미리 정하여졌으되 이 마지막 때에 너희를 위해 드러나셨으며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자신의 피를 통해 구하는 방법을 범죄 한 첫 사람 아담과 이브에게 알려주셨다. 양이나 소나 염소의 피를 흘려 죽인 그 짐승의 가죽을 그들에게 입혀 주시면서 앞으로 생기게 될 사람들에게 그 구원의 방법을 대대로 전달하게 하셨다.

심지어 이것은 우리나라 민간 신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이 얼마전에 박부형님이 맛있게 만들어 주신 팥죽이다. 과거에 무당이 굿을 하고난 뒤, 붉은 팥죽을 문 주위로 발랐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받은 풍습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각종 동물의 피를 흘리는 제사, 심지어 인신제사마저 있음을 전승들과 역사적 자료 및 고고학 자료들을 통해 볼 수 있다. 이것은 피가 생명이고 그것이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임을 확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짐승의 피, 나아가 사람의 피 마저도 결코 우리 각자의 죄들을 용서 받지 못한다. 오직 죄 없으신 주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용서하신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계속 그 보혈의 권능을 마음과 입술로 찬양할 때 그 많은 보혈 찬송들을 즐겨 부를 수 있다. 얼마나 감사한 찬송들인가! (롬 3:25)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3. 보혈은 원수관계를 끊고 화해하고 사면하기 때문이다(v.20~22).

(골 1:20)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화평을 이루사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즉 내가 말하노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과 싸움 속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온 세상 만물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분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싸움에서 적군에게 잡히면 죽음뿐이다. 왜 하필 싸우고 싸우되 영원히 싸워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원수관계가 되었는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 (사 59:2)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불법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법을 따르지 않는 존재가 사람이다. 태어나자 얼마 되지 않아서 아기들은 부모를 속인다. 이유도 없이 운다. 그러다 엄마가 가서 안아주면 생긋 웃는다. 조금 큰 아이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얼버무리며 거짓말한다. 그럼에도 사람들 사이에는 법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완전한 법에서 떠나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바로 그 불법이 죄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고 원수관계로 만들었다. (골 1:21) 한 때는 너희가 사악한 행위들로 인해 멀리 떨어져 너희 생각 속에서 원수가 되었으나

의와 죄의 전쟁에서 져서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승리하신 주님, 왕들의 왕으로부터 용서받고 사면을 받을 수 있도록 정한 길이 바로 그분의 보혈뿐이다. 불법을 행하고 불의를 행하는 우리 속에는 결코 의라고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전히 의로우신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와 화해하는 희생 헌물이 되셨다. (골 1:22) 이제는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자기 육체의 몸으로 화해를 이루사 너희를 그분의 눈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제시하려 하셨으니 그것은 오직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거룩한 피이다.

이 피는 우리의 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의 보혈이다. (요일 2:2)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 온 세상은 죄로 물들어 있고 죄로 오염되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했을 때 만물에게 저주가 내려졌다. 그것으로 인해 만물은 아파하고 신음하고 있다. 짐승들도 죽음이 닥칠 때 신음하면서 슬피 운다. 특히 보통 가축들은 죽으러 갈 때 그 낌새를 알아차리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예수님의 피가 온 세상에 내려진 죄의 저주까지 담당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창조물들도 세상이 회복될 천년왕국을 기다리고 있다. (요일 4: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죄들을 용서하는 긍휼과 화해를 통해 영원한 형벌로부터 사면해 주시는 그 사랑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인가!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어린양 보혈을 흘렸네

보혈 찬송이 왜 이렇게 많고, 새롭게 짓고 있으며, 우리가 계속 즐거이 부르고 있는지 확실히 알았는가? 보혈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를 알고 믿었는가? 그것이 무엇임을 맛보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실제 삶에서 어떻게 보혈을 찬송하고, 찬양할까? 바울처럼 수고로 하자! (골 1:29) 이 일을 위해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일하시는 그분의 활동에 따라 싸우며 수고하노라. 보혈로 인해 주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의 구원을 체험한 자라면 그 보혈의 가치가 얼마나 높고 그 값이 비싼지 알 것이다. 보혈이라는 동기로 수고할 때 얻게 될 결과물의 가치도 얼마나 높을까! 보혈에 대한 수고의 보상도 그만큼 크다는 것은 복잡한 공식이 필요 없이 곧바로 머릿속에서 암산될 것이다.

1. 보혈에 대한 수고는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교회를 위한 삶이다(v.24~27).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해 내가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고난들 뒤에 있는 것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해 내 육체 안에 채우노라. 바울은 보혈을 흘리시면서 까지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에 대해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수혈하듯이 잠시 누워서 자신의 피 가운데 일부를 빼어 주지 않으셨다. 헌혈량인 320~400cc만이 아니라 자신의 피 전체를 다 흘려주셨다. 40%도 아니고 100% 다 흘리셨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분이 죽으신 뒤에 로마 군병이 마치 확인사살 하듯이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러 심장에 있는 그분의 모든 보혈이 다 흘러나왔음을 복음서에서 반복적으로 보았다. 그분의 죽으신 몸이었지만, 피를 다 흘리시기까지 고난을 당하셨다. 여러분과 내가 어둠의 권능인 마귀의 왕국과 영원한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고난당하셨다. 또한 여러분과 나의 모든 죄들을 용서하시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시려고 고난당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와 화해하여 하나님과 함께 생명의 삶을 살도록 고난당하셨다. 그 고난의 증표가 바로 보혈이다.

그 고난을 기뻐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그분의 고난에 미치지는 않지만, 그분으로 인한 고난에 동참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그 고난은 특히 교회 안에 있다. 사소한 섬김 가운데 있다. 바울은 그 고난이 육체안에 채우기 까지 감당하기로 했다. 왜? 그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인지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삶의 중심에는 다름 아닌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그 보혈의 고난에 대한 보상으로 주신다. (골 1:25) 내가 교회의 사역자가 된 것은 너희를 위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려 함이니라. 26)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2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는데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그 고난에 동참하자!

2. 보혈에 대한 수고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완전한 자로 드리는 삶이다(v.28).

완전하지 않는 사람이 완전하게 될 수 있음은 보혈로 용서받고 화해된 자가 계속 보혈의 권능을 믿는 것과 관련 있다. 보혈로 구원받은 자는 몸이 구속받은 후, 즉 하늘에 가서는 완전하게 된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에서 완전하게 될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함을 바울과 골로새 교회를 통해 알려주신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자로 드려졌고 또한 골로새 교회가 그렇게 되도록 수고했다. 그들을 주님께 완전한 자로 드리도록 예수 그리스도만을 선포했다. 어떻게? 각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경고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으로 가능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전달하되, 잘못하는 부분에 대해 꾸짖었다. 완전하게 되도록 그렇게 하신다. 성령님의 역사는 아주 조용하게 역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혼이 떠나갈 정도로 호되게 꾸짖음 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얼마든지 고난을 받을 수 있다. 설교를 듣고 큰 찔림을 당하여 아플 수 있다. 실제 우리 각자의 생활을 꼬집는 말씀 선포를 듣고 심지어 시험에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고난들을 보혈의 권능으로 이겨내면 완전한 자로 자신을 드릴 수 있다. 진정으로 그 보혈을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어떻게 이겨내고 완전하게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죄인이 의롭게 될 수 있는가? 내 인생에서 맨 처음 단 한 번 영원한 구원을 받았을 당시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말씀으로 찔림을 주실 때 그 영원히 살아 있는 보혈의 권능을 믿고 자백하는 것뿐이다. (요일 1:7)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초청. 보혈이 얼마나 큰 권능을 가지고 있는가! 이 세상의 어둠의 권능, 사망과 죽음,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건질 수 있는 힘이 주님의 보혈에 있다! 이 보혈을 찬양하는 삶은 찬송가로만 그칠 수 없다. 실제 보혈을 찬양하는 모습을 바울을 통해 보여주셨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즉 교회 속에서 강력하게 일하시고, 하위 목자를 통해 활동하시는 그분의 활동에 따라 싸우며 수고하는 것이다. 함께 보혈의 권능에 따라 교회를 위하자. 보혈로 사신 교회를 섬기자. 보혈의 권능은 그 어떤 강력한 존재들보다도 강하다. 우리의 대적 육신과 마귀와 세상이 그 보혈의 권능 안에 있는 우리 교회를 결코 이길 수 없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지난 2022-01-23 주일오전 설교문>

Filed Under: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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