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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믿음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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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다

3월 24, 2022 by 한혜신 Leave a Comment

Asaph | 요한복음 1:1~14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이름들이 얼마나 큰 권능을 가지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확고하게 새기길 주님은 원하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 이름이 무엇임을 알아가는 사람은 결코 이 세상을 무가치하게 살거나 보람 없게 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처럼 주님을 알면서 그분이 주시는 생명을 풍성히 얻고 큰 복을 경험할 것을 확신한다! (요 20:31) “이것들을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10:10하)…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또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1. 하나님은 온 세상의 처음을 여셨다(v.1~2).

처음은 시간의 시작을 말한다. 처음은 시간과 함께 이 세상 공간의 시작도 말한다. 처음이 없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의미한다. 시작이 없다면 어떤 생각도 계획도 없다. 처음, 혹은 태초는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기원을 의미한다. 기원의 책은 창세기인데, 요한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기원의 기원을 강조하신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일에 대해 의미를 둔다. 태어날 때 자신이 그 성별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태어날 곳, 태어날 부모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을 낳은 부모에게 애착을 두고 고향에 애착을 둔다. 어떤 이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입양되었지만, 자신의 시작을 찾는 일을 하곤 한다. 그래서 조상들을 기리는 풍습이 여러 민족들에게 있다. 족보라는 것이 있고, 이를 너무 중요시 한 나머지 유교라는 종교가 생겼다.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은 항상 시작을 향해 나아가고자 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시작 중에 시작에 하나님이 계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을 시조로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나의 부모님의 부모님의 부모님… 계속 올라가면 나오는 최초의 시조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일반적인 우리의 양심과 상식으로 설명해 주고 계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지식인가! 이것은 사람이 만들 수도, 짜낼 수도 없는 지식이요, 지혜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시작을 다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최소한의 양심으로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2.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이라고 부르시면서 모든 것을 만드셨다(v.1~3)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다. 말을 통해 큰 힘이 나와서 어떠한 열매가 맺어짐을 일컫는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 라는 속담도 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에 쪽박을 찬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음은 일반 상식이다.

사람의 말이 그러하다면 모든 것의 시작을 여신 분의 말은 얼마나 더 큰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을까! 하나님은 말씀으로서 온 세상을 만드셨다! 모든 것의 기원의 책인 창세기 1장을 보면 빛이 있으라! 하셨고 그대로 되었다. 식물과 동물들을 풍성히 있으라! 하셨을 때 그대로 되었다. 그 누가 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가? 오직 말로 전혀 없었던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소리는 파동을 만든다. 스피커위에 물그릇을 올려놓으면 파동이 생긴다. 좁쌀이나 콩을 올려놓으면 파동이 생긴다. 주파수에 따라 모양이 제각각이다. 심지어 일정한 주파수에 따라 모양이 정해진다. 말소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할까? 사람이 그 말씀이신 하나님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되면 사람은 마음과 심지어 그 죽었던 영이 파동을 받게 되고 거기서 변화가 일어난다.

3. 말씀이신 하나님은 생명을 만들 수 있는 크고 놀라운 권능을 소유하고 계신다(v.4).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씨에는 무엇인가 생동하는 것이 들어 있다. 그것이 생명력이다. 식물의 씨에는 생명이 들어 있다. 동물의 씨에도 생명이 들어 있다. 사람의 씨에도 생명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처음으로 읽은 요한복음의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이 사람으로서 전혀 이해 안 될 부분이 아니다. 일반상식에 의해서도 이해가 충분히 된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사람이 눈으로 보지 못하더라도 그분의 이름이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사람의 말보다 훨씬 뛰어난 권능을 가진 말씀이라면, 우리는 이해할 수 있고 그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한은 이 사실, 이 진리에 대해 요한일서를 통해 다시 쓰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요일 1:1)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요한을 비롯한 사도들은 생명의 말씀이신 하나님에 대해 직접 귀로 들었고 심지어 눈으로 보았다. 또한 손으로 만졌다. 요한은 이 엄청난 권능을 가지신 말씀이라는 분과 대면했다. 대화했다. 그리고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그리고 잠도 같이 잤다. 식사도 같이 했다. 일상생활을 같이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와 육체적으로 함께 했다고 증언했다. 이것이 거짓이라 단정해도 그 증거는 없다.

4. 그 크고 놀라우신 말씀이라는 이름의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v.14,18).

말씀으로 불려서 그 말씀으로 온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을 만드셔서 대대로 생명을 전달하게 하신 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만 계시지 않고 눈에 보이는 존재로 오셨던 때가 있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끼리 서로를 볼 수 있듯이, 세상 만물이 볼 수 있는 것처럼 존재하신 적이 있었다. 보지 못하는 자신을 밝히 드러내셨다.

하나님께서 육신, 즉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은 결코 말씀이신 하나님이 아니다. 하늘의 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와서 사람으로 변한 곰과 결혼을 하는 일은 이 구절과는 전혀 다른 꾸며낸 이야기이다. 지금은 그 신화를 농경문화로 재해석해서 터무니없다고 일러준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는가? 말씀이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은혜와 진리를 주기 위해 오셨다. 은혜와 진리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도록 함이 아니다. 은혜와 진리는 저 하늘의 영원한 빛과 생명을 주는 하늘의 권능이다. (요일 5:7)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요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신다. 하늘에 있고 하늘에서 증언, 즉 말씀하는 존재로 설명하신다. 그것도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으로 자신을 알려주신다. 이 삼위일체에 대하여 사람을 이해시키시려는 것보다 하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속하지 않고 저 하늘에 속해 있음을 알려주신다. 왜 자신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서 왜 사람의 몸을 입으셨는지 알려주신다. 사람들을 이 땅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고 하늘로 올리시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이 땅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영원하지 않는가? (요 1:5)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이 땅은 어둠에 장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두운 죄가 땅의 사람을 지배하여 하나님을 거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11)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빛과 생명으로 오셔서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비췄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고, 더 나아가 세상에 계셨지만,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했다. 나아가 그 말씀 하나님이 자신이 선택하신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그들조차도 자신들을 선택하신 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조차 증명하고 있음을 보고 있다. 아직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은 눈이 멀어서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구약의 대언자들이 전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목적과 계획을 결코 멈추지 않으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생명력인가? 혹한에도 버티고 생명을 유지하는 끈질긴 생물들이 있다. 그것들은 자신의 그런 생명력을 준 훨씬 더 놀라운 분의 생명력을 대변하고 있음은 더욱 분명하다. 그분은 사람들을 생명이며 참 빛인 자신에게로 인도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셨다. (요 1:6)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더라. 7) 바로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이것은 그 빛에 대해 증언하여 모든 사람이 자기를 통해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그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언하도록 보내어진 자더라.

사람 자체는 하나님과 똑같이 권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분의 놀라운 생명력으로 사람이 사람을 멸망하고 없어질 이 땅으로부터 올려 하늘로 데리고 올라갈 수도 없다. 어둠속에서 방황하지 않게 하는 참 빛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생명과 빛을 전달하는 통로로 사용하신다. 그 사람이 요한이었다. 또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 구속하는 일을 다 이루신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이 세상의 참 빛이심을 드러내신다. 심지어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들이 그 참 빛에 비춰졌음을 가르쳐주신다. (요 1:9) 그 빛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 우리는 이 사실에 증인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나는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라고 변명할 수 없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한 채로 죽을 수가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참 빛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시대에 역사하신 적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과거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은 항상 비춰졌다.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신 하나님을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느 세대에서도 부인할 수 없다. (롬 1:20)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말씀이시고 참 빛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을 우리 강릉믿음침례교회는 받아서 믿었고 확신하고 있다. 처음부터 계신 말씀이시고 참 빛이신 그분이 육신이 되어 오셨던 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요한을 통해 들었다. 우리는 이 분에 대해 전해주되 이분께서 얼마나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리자! 그 생명력은 창세전부터 가지고 계셨음을 주님이 직접 선포하셨다. (요 17:5) 오 [아버지]여,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이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은 그렇게 이 온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함께 하늘의 영광중에 계셨다. 그리고 서로를 영화롭게 하셨다. 그 영광과 영화로움에 멸망할 죄인인 사람들도 참여할 기회를 주시려고 그분은 육신이 되어 오셨던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심지어 다시 오실 그날에도 그 생명과 참 빛의 의미인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불리실 분이다. (계 19:13) 또 그분께서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느니라. 이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어 오신 그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권능을 주시기 위함임을 오늘 사도 요한과 침례자 요한을 통해 선언하신다! (요 1:12)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13)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 우리 주님은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먼저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목적에 따라 우리는 주님의 교회에 속하여 육신으로 오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주님의 권능과 지혜의 이름인 말씀을 우리가 다루고 있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무겁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큰 복인가!

왜냐하면 (요일 5:20) 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사 우리가 진실하신 분을 알게 하셨음을 우리가 알며 또 우리가 진실하신 분 곧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아노니 이분은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니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실존하고 자신의 생명력과 활동력이 세상을 초월함을 우리가 깨달아 알게 하신다.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선택한 독생자 예수님은 우리의 선택이 결코 후회가 되지 않게 이 요한복음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제 수요일 마다 주님의 생명력을 풍성히 얻는 시간이 되자!

<지난 2022-01-05 수요일 저녁 설교문>

Filed Under: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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