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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믿음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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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으로 채워지고 아는 것으로 자란다

4월 4, 2022 by 한혜신 Leave a Comment

Asaph | 골로새서 1:9~12

모르는 것이 약이다 라는 말이 있다. 아이에게 어른에 대해 미리 다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결코 약이 될 수 없다.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라의 성령 충만한 목회에 따라서 열매를 맺고 성장했다. 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데 준비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끊임없이 기도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라고 말한 장본인이 바울이었다. 그는 말한 것을 자신이 먼저 지켰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주 예수님을 알고 알게 된 주님을 단순하게 따랐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님 보다 더 큰일들도 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로서 예루살렘 교회라는 단 하나의 교회를 개척하셨지만, 바울은 훨씬 많은 교회들을 개척했다. 그리고 파송하고 또 그들이 교회들을 개척하도록 자신이 죽는 날까지 돕는데 애썼다. 주님의 말씀인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들도 하리라는 예언적 말씀이 성취되었다. 바울은 자신보다 더 큰일들을 할 수 있도록 골로새 교회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다. 주님께서 골로새 교회를 들어 사용하시도록 그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모든 지혜 즉 지식에 따른 삶의 방식들을 위해 바울은 기도했다.

1.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즉 그분의 뜻에 대한 지식을 채우도록 기도했다(v.9).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라. 나는 전임사역자가 된 후에 어린아이들과 교회에서 생활했을 때가 기억난다. 아이들이 교회 방에서 떠들고 소리쳐서 난장판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다그쳤다. 그런데 눈치보며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러고 있는 나를 안타깝게 보신 주일학교 선생님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말 잘 안 듣죠? 사탕이나 젤리를 줘보세요. 나는 아하! 내가 몰랐구나! 하며 그 다음부터 그들을 먼저 이해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인간관계 역시 같은 패턴이다. 먼저는 알고 이해해야 한다. 모른 채 말로만 진행하면 안 된다.

하물며 이러한 질서를 온 세상의 창조 시에 만들고 세우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얼마나 더 그러하랴! 하나님께서 항상 먼저 우리를 헤아려 주셨다. 그리고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다.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시려고 말씀이신 분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 이러한 주님 뜻의 지식으로 채워질 때 골로새 교회가 행복하게 됨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바람은 그 교회 목자인 에바브라의 바람이었고, 결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원함이었다. 교회가 주님의 뜻을 모르고 어찌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교회가 주님의 뜻을 모르고 영적으로 깨달을 수 있을까?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고 무엇을 계획하시는지 우리는 매일 성경말씀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리고 채워진 주님 뜻에 관한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주님이 인정하시는 지혜이다. 이 세상에서 쌓고 내 안에 자리 잡는 지식들이 주님의 뜻과 비교해야 한다. 그리고 잘못된 지식이면 걸러내야 한다. 그 어떤 좋고 뛰어난 지식과 그 지식에 따른 지혜라 할지라도 주님의 뜻이라는 거름종이에 걸러야 한다. 주님이 그 지식을 인정하시는지 성경이 그것을 확실하게 검증해 준다. 이와 같이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들었으므로 서두에서 이렇게 그분의 뜻에 관한 지식으로 채우라고 전제를 했던 것이다(v.9). 그는 로마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도 언급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우리는 완전할 수 없다. 우리의 지식과 뜻이 완전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그분의 뜻은 늘 완전하다. 그러므로 그분이 하고자 하심에 내가 하고자 함을 비교하는 것이 생각을 새롭게 함이다. 이 세상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대비하면 나의 생각이 새롭게 바뀐다. 그러면 주님께서 받으실만한 지식과 지혜가 무엇인지 매우 간단하게 밝힐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흔히 가지고 있는 굳어진 지식과 지혜가 있다. 삶의 방식이 있다. 그것을 고정관념 혹은 선입견이라 할 수 있다. 내 주위에서 알고 얻은 지식들이 습관화 되고 생활 패턴이 된다. 예를 들면 치약을 짜는 일이다. 어떤 이는 밑에서, 어떤 이는 중간에서 짠다. 혹은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첫 반응이다. 가만히 생각하는 사람, 먼저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이다. 정해놓은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 이렇게 굳어진 지식이 삶을 지배하고 있을 때, 바울의 기도대로 주님의 뜻을 알고 채우면 어떻게 되는가?

바로 이러한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여 오랫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굳어진 고정관념이 깨지고 바뀐다. 주님의 뜻을 알게 되니까 선천적인 성격과 행태마저도 수면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주님의 지식과 동떨어져 있는 나쁘고 악한 습관이 확연히 눈에 보이게 된다. 매일같이 세상과 동화되려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영적 깨달음을 얻게 된다(v.9). 나아가 삶 전체가 주님으로 인해 풍성해진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그렇게 썼다. (고전 1:5) 너희가 모든 일 곧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되었으니 군인 교관들은 마음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곧잘 훈육한다. 영과 혼이 주님의 지식으로 채워져 풍성하면 물질적인 필요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조차도 깨진다. 삶에 만족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주님께 드리는 교회가 되자. 주님 뜻으로 매일 매일 채우는데 아낌없이 주님께 드리는 교회가 되자.

2.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나도록 기도했다(v.10)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면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나는 법이다. 배 속이 음식으로 채워지면 몸에 영양분이 공급되어 자라나듯이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그분에 대한 지식이 혼 속에 채워지면서 영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한다. 급속한 성장 중에 함께 따라오는 것이 있다. 마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겪는 성장통 처럼 힘든 일들도 겪는다. 내가 어떤 고난을 겪고 있는 분과 교제했던 적이 있었다. 저는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습니다. 부족하지 않고요…라고 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을 느끼지 않지만, 어떤 면은 부족함을 느낀다는 뜻이었다. 육체적인 부분보다 훨씬 더 필요를 갈망하고 갈급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정신적인 면이나 영적인 면이다.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욕구들이다. 저와 대화한 그분은 영적으로는 항상 준비 되어 있고 풍족한 분이셨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꼈던 것이다. 바로 그분은 성장통을 겪고 계셨다.

우리가 주님을 알아가면서 영적인 성장통을 겪을 때 조심해야 한다. 그로인해 우리가 주께 합당하게 걷지 못할 수도 있다. 사탄이 개입하여 우리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성장할 때 주께 합당하게 걷도록 기도했던 것이다. 그 성장통은 교회에 갑작스런 문제들로 다가온다. 또한 교회에 속한 어떤 사람 혹은 사람들이 일으키는 풍파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문제와 사람과 함께 걷지 않고 오직 주와 함께 걸어야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를 이 교회로 불러 모으신 분은 어떤 이슈나 사람이 아니었다. (엡 4:1) 그러므로 [주]의 갇힌 자 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를 부르실 때에 허락하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걷고

주께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걷자.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불러 건지신 주님은 그렇게 부르신 자들을 하나가 되도록 부르셨다. 즉 그들을 교회로 만드셨다. 자신의 몸이 되도록 부르셨다.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다. 출신이 다르고 개성도 다르다. 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주님은 자신을 더욱 잘 알게 하시고 배우게 하심을 믿음으로 걷자. 그 일이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상관없다. 주님은 모든 일을 사용하시는 분이다. (골 1:10상)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하고…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신다. 교회에 성장통이 올 때 오히려 교회를 더욱 사랑하자. 주님은 교회에 속한 지체들이 교회의 필요를 보고 살피는 일을 기뻐하신다. (살전 4:1) 그러므로 또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님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걸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서 받았은즉 그대로 더욱더 넘치게 하라.

주님의 지식을 알고 채우면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교회에 충실할 것이다. 천재지변이나 어떤 불가항력적인 형편이 없는 한 주일 오전만 모였다면, 오후에도 모일 것이다. 주일에만 모였다면 수요일도 모일 것이다. 삶의 우선순위에 가정과 함께 교회도 두게 될 것이다.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으로 구성된 교회에게 그렇게 편지했다. (히 10:25)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되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리고 이렇게 편지를 마무리했다. (13:2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선한 일에서 너희를 완전하게 하사 자신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자신의 눈앞에서 매우 기쁜 것을 너희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오직 주님의 뜻 안에서 정한 교회의 모든 일들에 참여할 때 억지로 하거나 사람 눈치 보고 하지 않아야 한다. 오직 주님을 아는 것으로 해야 한다. 주님에 대한 지식으로 해야 한다. 주님의 눈앞에서 매우 기쁜 것이라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신실하게 주님을 따를 수 있다. 교회에 성장통이 와도 계속 주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기를 바울은 기도했다.

3.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성장하면서 모든 강력인 주님의 기쁨으로 강건하게 되도록 기도했다(v.11)

골로새서와 쌍둥이 서신서인 에베소서에서도 바울은 그렇게 기도했다. (엡 3:16) 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자신의 [영]을 통해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게 됨을 너희에게 허락하시며 속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간다. 속사람이 주님 뜻의 지식을 채운다. 그리고 속사람이 자라고 강건하게 된다. 그 속사람은 옛사람인 육신과 성령사이에서 선택하는 또 하나의 나다. 혼이 구원받았을 때 새롭게 주어진 성품이다. 바울은 자신의 옛사람이자 육신을 로마서 7장에서 어떻게 표현하는가? 항상 죄 아래 팔려가는 사망의 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속사람이다. 교회에 속한 각 지체가 주님에 대한 지식과 주님의 뜻을 아는 것이 속사람 안에 채워질 때 성장하고,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교회를 강건하게 만들어 감을 바울을 잘 알고 기도했다.

세상의 잡다한 지식들이 주님의 완전한 지식으로 걸러질 때 우리는 강건하게 된다. (엡 6:10) 끝으로 내 형제들아, [주] 안에서와 그분의 강력한 권능 안에서 강건한 자가 되라. 우리가 강건하게 됨은 오직 주 안에서이다. 사람과 세상 안에서가 아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에 따라 강건하게 될 수 있다. 모든 강력함 안에서 강건하게 될 수 있다. 페르시아에서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려고 돌아온 느헤미야를 보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지식과 그분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이렇게 외쳤다. 주의 기쁨이 우리의 힘이니라! 이것이 바울이 기도한 내용들과 얼마나 유사한가! 그 기쁨은 주님의 기쁨이다. 우리의 육신의 기쁨이 아니다. 잠시 잠깐의 세상의 기쁨이나 코미디언이나 해학가들이 주는 기쁨이 아니다. 사이다 발언자가 주는 기쁨도 아니다. 그런 기쁨들이 우리를 강건할 수 없다. 오직 주님이 매우 기뻐하시는 그분의 기쁨이 우리의 힘이다! 주님을 알고 채워져 자라가면서 그분의 기쁨에 참여하자. 그리고 모든 인내를 할 수 있는 힘과 오래 참음에 이를 수 있는 권능을 얻고 강건하게 되자.

4.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아버지께서 주시는 상속유업을 통해 감사드릴 수 있도록 기도했다(v.12).

주님의 지식과 주님의 뜻을 아는 것에서 자라가면, 이 땅을 뛰어넘는 하늘 아버지의 상속유업을 알고 모든 이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엡 1:11)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상속유업을 계획하셨다. 그것이 누구에게 돌아갈지도 정하셨다. 바로 자신에 대해 알기를 기뻐하고 갈망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뜻 가운데 하나인 성도들의 상속유업을 갈망하는 자들이다. 세상의 상속유업보다 주님이 마련하신 이 상속유업을 위해 자신을 내어 드리는 자들이다. 주님은 그 상속유업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에 합당하다고 인정하실 자들에게 상속유업을 예정하셨다. 바로 주님의 교회에게 그 상속유업에 참여하도록 자격을 부여하신다. 이와 같은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에 대한 지식이 있는 자는 어떠한 삶을 살까? 감사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 어떤 고난과 힘든 일이 닥쳐도 감사할 것이다. (엡 5:20) 모든 일로 인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하고

초청: 주님의 지식인 성경으로 모든 세상과 나의 지식을 판단하여 바로 세우자. 이것이 속사람이 자라고 교회가 성장함을 믿자. 또한 성장통이 올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때는 오히려 주님을 더욱 알기를 갈망하자. 그리고 주님의 기쁨이 무엇인지 성경으로 더욱 더 찾고, 밝혀주신 기쁨대로 행하여 영적인 힘을 유지하자. 사람의 숫자나 양이 힘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감사하는 놀랍고 풍성한 삶을 경험하고 기뻐하자.

<지난 2022-01-16 주일오전 설교문>

Filed Under: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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