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aph | 요한복음 1:27; 누가복음 3:10~18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침례자 요한의 신분과 자격에 의문을 제기 했다. 네가 뭔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침례를 주는가? 라고 따졌다. 그때 그는 자신이 주님의 신발 끈을 풀거나 신발을 나를 자격도 없다고 자신을 가축과 짐승처럼 낮추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나 노예도 될 자격이 없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소개했다. 즉 주님을 선포할 자격은 있다고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주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권세를 위협하는 크고 위대한 자가 요한을 경계했다. 나아가 그가 하는 모든 말에 꼬투리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들처럼 사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들처럼 득세하는 방법이 달랐다. 요한은 위선적이지도 않았고 거짓과 속임수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가 사는 곳은 도시의 사거리가 아니고 황량한 광야였다. 그럼에도 요한이 선포하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신들은 두려움이 가득했다.
반면에 요한은 그들과는 다르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히 담대하고 용감하게 주님이 전하라고 하신 진리들을 가감 없이 선포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렇지 않으면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는 불 침례를 받으리라! 그들을 향해서는 그 메시지가 온전히 멸망에 대한 경고장이었다. 주님의 신발 끈을 풀거나 나를 자격이 없는 요한이었지만, 주님을 선포할 자격은 얼마든지 있었다. 종이나 노예도 아니고, 개나 소나 양이지만, 개처럼 무섭고 당차게 짖을 자격이 있었다. 소처럼 음메~ 하고 부드럽게 권면할 자격도 있었다. 양처럼 울 자격도 얼마든 있었다!
오늘도 이어서 요한이 선포한 진리들을 볼 것인데 이번에는 권면이었다. 왜? 그리스도의 오심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아니라, 반가워하고 기대하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즉 요한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러 나온 자들이었다. 주님께서 오시는 그 크고 곧은 길 옆에서 간절히 기다린 자들이었다. 요한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맞이하면서 그분과 함께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권면해 주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알려주었다. (눅 3:10)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듣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갈망으로 여쭈었다. 이 질문에 대해 권면해줄 자격이 얼마든지 있었던 요한의 대답을 들어보자.
1.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라(눅 3:11).
(눅 3:11)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겉옷이 두 벌 있는 자는 하나도 없는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니라. 죄인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래서 남는데도 불구하고 없는 이들에게 주지 않으려고 욕심을 부린다. 혹은 손은 안대로 코를 풀려고 한다. 놀고먹으려는 게으름을 품고 살려고 한다. 그러나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자신을 다 주시기 위해 오셨다. 이런 분임을 알고 믿으며 그분의 오심을 기다린다면 자신의 그러한 악한 속성을 거부하고 주님이 속성을 따르게 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처럼 속여서 빼앗는 악한 삶의 방식을 거부하라고 요한은 그들에게 권면했다.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상징적이면서도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의 바른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면 자신이 가진 것들을 없는 자들과 나누게 된다는 사실이다.
옷과 음식은 사람이 몸의 생명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필요들이다. 최소한의 필요도 없어서 생명에 위험까지 느끼는 지체가 교회에 있다면 교회가 그 사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일어날 수 있도록 최대한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반면에 있는 사람이라면 교회가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사람이 일을 하면 먹고 살 수 있도록 창조 시에 원칙과 질서로 정해놓으셨다. 그래서 교회당에 노숙자가 온다면 교회의 일들을 시켜 보상으로 주어야 한다. 아주 적고 미약한 힘이 요구되는 일이라도 돈 좀 달라고 내밀 수 있는 손과 내미는 힘이 있다면 일하여 입고 먹을 수 있다. (살후 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2. 정해 준 것 이상으로 거두지 말라(눅 3:12~13).
(눅 3:12) 그때에 세리들도 침례를 받으려고 와서 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정해 준 것 이상으로 거두지 말라, 하니라. 로마시대 세리들은 마음만 먹으면 빠른 시간 안에 부를 늘일 수 있는 위치와 조건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곧잘 죄인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들이 정해진 것 이상으로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이익을 남기는 일이 흔했다. 더군다나 로마는 이 세리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세리들이 소문을 듣고 요한에게 찾아왔을 때 그들은 요한이 외친 회개하라는 선포를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과거의 잘못들과 죄들을 청산해야 함을 알았다. 오실 메시아를 맞이한다면 이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였다.
우리는 정해진 것 이상으로 더 원하는 마음을 본다. 예를 들면 복권이 있다. 억 단위의 당첨금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10억이 당첨된다면 어떻게 관리할 것까지 상상한다. 그러나 과연 불로소득이라는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해 줄까? 그 마음이 정말 안식과 평안이 있을까? 아무리 어떻게 쓸지 계획을 철저히 했다 하더라도 그 거금이 손에 쥐어질 때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변하고 바뀔지 우리는 모른다. 그 돈을 과연 평소처럼 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특히 그 마음이 얼마나 높아질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이 높아지면 스스로가 뭐가 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신을 낮추지 않고 높인다. 열심히 일하여 부유하게 된 한 부자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일확천금이 갑자기 나의 계좌에 들어온다면, 자신을 높이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 역시 현재 주신 것들에 만족해야 한다. (딤전 6:6) 그러나 만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큰 이득이 되느니라.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히 13:5)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다. 주님을 정말 믿는다면…
3. 권력과 힘을 가지고 억누르지 말라(눅 3:14).
(눅 3:14) 군사들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아무도 폭행하지 말고 아무도 거짓으로 고소하지 말며 너희가 받는 급료로 만족하라, 하니라. 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와 권능을 보는 대목이다. 요한을 통해 광야에서 외치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심지어 로마 군사들도 그 앞에 나오도록 했다. 당시 로마 제국 시기는 군사들이 가진 특권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로마 황제들은 보통 군인 출신이었다. 부와 명예를 얻고 출세하는 직종이 군인이었다. 전쟁에 나가서 공을 세우길 갈망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전공을 올리고 높은 지위에 올라서 종종 하는 일은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기보다 억압했다. 나아가 자신들의 억압의 행태를 정당화했다. 그간에 숱한 훈련과 전쟁으로 단련된 몸과 마음으로 사람들을 폭행하고 누르기가 얼마나 쉬웠을까! 그러면서 자신들의 권력으로 거짓 고소하여 책임을 회피하고 지위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그들은 찔리기 시작했다. 양심에 저촉되는 일들이 부대 안에서 행해짐을 보았지만, 위에서 부패하니 아래에서는 그 악습을 따라갔다. 명예와 영광도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는 부정부패로 더러워져 갔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메시지 회개하라는 말을 듣고 과거를 청산하길 갈망했던 것이다.
사람은 가족 안에서, 혹은 민족과 사회 안에서, 또는 정치적으로 지위가 오르고 세력이 커지면서 관리하는 책임이 주어지지만, 권한도 주어지게 된다. 권위자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그 권한으로 없는 자들과 어려운 자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약한 자들을 일으켜 세워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다. 또한 그 책임에 대해 정해진 급료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권위자가 매우 적다. 침례자 요한 당시에도 회개하라고 외친 목적이 이것이다. 그만큼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간단한 원리에 입각하여 살지 않고 속히 그 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그분의 곧바른 길을 선포하는 것뿐이다.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처럼 삶으로 보여야 한다. 회개했다면,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 열매는 내가 먼저 그렇게 살므로 맺어진다!
요한의 이러한 담대하고 간결하며 분명하고 확실한 선포를 들은 백성들은 기대가 충만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그의 영적인 권능이 대단했다. 그의 삶과 그의 메시지가 일치하여 그 시대 어떤 종교지도자, 청치지도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리를 백성들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눅 3:15) 백성이 기대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마음속으로 요한에 대해 그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매 그러나 그는 그들의 기대와는 달랐다. 자신이 아니라 진짜 주님이 오실 것을 알렸다. (눅 3:16) 요한이 그들 모두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시나니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요한은 종 이하, 사람보다 못한 존재로 자신을 낮추었다. 그리고 오직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 계속해서 전했다. 사람들이 그분을 믿도록 그분만을 소개했다. 왜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경고하고 권면하며 왜 회개의 침례를 주는지 그 모든 이유는 오직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뿐임을 선포했다. 자신은 물로 침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실 것을 선포했다. 그분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로 침례를 받을 것을 빠짐없이 경고했다. 그는 잡혀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눅 3:17) 곧 손에 키를 들고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사 알곡은 모아 자신의 곳간에 들이시되 껍질은 끌 수 없는 불로 태우시리라, 하고
우리도 그와 같이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그에게 나와서 질문한 자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리이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의 핵심을 알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겉이 아니라 속이 변해야 한다. 속이 먼저 변하면 없는 자에게 주게 되고, 정해진 것 이상으로 거두지 않고, 만족하면서 권한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겉으로 바뀌려고 왔던 그들에게 해줄 대답은 진노와 멸망의 경고뿐이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온 세상을 멸망시키신 이유가 무엇이었나? (창 6:5)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렘 20:12상) 그러나, 오 의로운 자를 시험하사 속 중심과 마음을 보시는 만군의 {주}여,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은 전에도 노아가 120년 동안 회개하라고 외치게 하셨다. 그 전에는 에녹을 통해 외치게 하셨다. (유 1:14) 아담으로부터 일곱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관해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시나니 15)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사 그들 가운데 경건치 아니한 모든 자들이 경건치 아니하게 범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또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하여 말한 모든 거친 발언에 대하여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어서 주님 오시기 바로 직전에 회개하라고 요한을 통해 외치게 하셨다. 내가 가던 길을 살피고 돌이키는 회개는 참 빛이신 주님을 받아들여 어둠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도록 함이다. 겉모습을 바꾸고 겉을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처럼 꾸미고 치장해 봤자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눅 16: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너희 자신을 의롭게 만드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들 가운데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이니라. (약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고서 사람들의 외모를 중시하지 말라.
초청.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 그분께서 오시기 전에 회개하자! 잘못된 삶은 잘못된 마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침례자 요한처럼 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주님을 소개하는 삶으로 나아가자! 주님을 힘입어 각 사람에게 나아가 경고의 말씀과 권면의 말씀을 선포하자! (눅 3:18) 또 권면하면서 다른 많은 것을 백성에게 선포하더라.
<지난 2022-01-26 수요일 저녁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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